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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튀뻥뻥뻥!!!!!!
The Lights : NEON CITY / 2016년 가을 (1) 본문
사실 이 연주회는 제목이 따로 없는 연주회였다. 포스터에 대문짝만 하게 적힌 <모닥불 가을 연주회>. 사실 나는 이게 싫었다. 기껏 힙한 네온을 선택해두고 그냥 모닥불 연주회라니. 지금 보면 폰트도 너무 촌스럽다. 지금은 꾸밈없는 고딕체를 좋아하지만 당시만 해도 저런 모양 들어간 굵은 폰트를 좋아했다. 뒷 배경도 구글링 하면 제일 처음에 나오는 이미지이다. 너무 흔하고 뻔하다.
지금 같으면 저 포스터를 내가 용납할 수 없었겠지만 그때는 내 연주회도 아닌데 뭐 이런 것 까지 관여해야 하나 생각했다. 그래서 그냥 별 말없이 A 선배가 원하는 대로 포스터를 마무리 지었다. 약간 무책임해 보일 수도 있지만 당시 나는 이 연주회가 나의 연주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 역할은 A 선배의 연주회에 내가 숟가락 얹는 정도? 공대생들 우글거리는 동아리 내에 몇 안 되는 포토샵 가능자의 포지션이 나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만들어야 하는 포스터나 팸플릿을 애매한 ppt나 엑셀 같은 거로 만드는 것보다는 기왕 포토샵이 있어 보이니까. 물론 A선배가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은 없다. 그냥 나 스스로가 이렇게 역할을 한정 지었다.
처음 연주회 기획을 제안받고 나서 처음에는 뭐 다들 그렇듯이 '고민해보겠다'며 튕겼다. 5박 6일짜리 동아리 여름 MT 마지막 날 뒤풀이 자리에서였다. 당시 회장 친구와 A 선배까지 내 옆에 둘러앉아 얘기를 하는데 내가 엄청 대단한, 그런 필요한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좀 즐겼나 보다. 거절할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그날 밤, 몇 차례 튕기기를 즐기다가 결국 하겠다고 했다.
내가 이 제안을 받아들인 데에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로, 이게 내 차례라고 생각했다. 동아리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속된 말로 '짬'이 차게 되고 웬만큼 동아리 사람들에게 밉보인 게 아니라면 학번 순으로 연주회의 '연출'을 맡을 기회가 찾아온다. 연출이라고는 하지만 실제 공연에서의 연출과는 약간 결이 다르다. 우리 동아리에서 '연출'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공연을 진행할 수 있는 권력자? 총책임자?의 느낌이 강했다. 그리고 그 연출의 아래에는 '기획'을 두게 된다. 기획은 연출을 돕는 역할. 포스터나 팜플렛을 만드는 정도의 역할. 가끔 괜찮은 아이디어가 있을 경우에는 기획의 아이디어가 쓰일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조연출에 더 가까운 역할. 그게 우리 동아리에서 정의 내린 연출과 기획이었다. 연출과 기획이 일종의 직급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실제 공연 판에서 기획자와 연출은 상하 관계가 아니다. 서로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일 뿐. 오히려 돈을 주는 사람이 기획자이기 때문에 자본의 논리로만 보면 기획자가 더 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 공연이 어떻든 우리는 모닥불 소속이고 모닥불의 규칙은 그랬다. 연출 아래에 기획. 그렇기 때문에 학번 순으로 찾아오는 연출의 기회가 나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대체로 남자 선배들이 주로 연출, 여자 선배들이 기획을 맡는 그림이 일반적이기도 했고 - 아닌 경우도 있었다 - 나보다 더 인간관계 좋고 기타 잘 치는 선후배들이 많았기 때문에 굳이 나한테 연주회를 맡길 이유가 없어 보였다. 그래서 A 선배가 기획을 맡아달라고 했을 때 이게 나에게 찾아온 순서라고 생각했다. 지금 거절하면 아마 내 차례는 이렇게 지나가고 다시 연주회를 맡을 일은 없겠지, 싶었다. 그래도 동아리 열심히 했는데 한 번은 해봐야지!
두 번째, A 선배가 괜찮은 사람이었다. 어차피 기획이 연출의 하위 직급이라면 괜찮은 연출이랑 준비를 하고 싶은 게 당연하니까. 내가 아무리 뭔가를 하고 노력을 하더라도 연출의 평판으로 이 연주회의 급이 결정이 될 텐데 기왕이면 좋은 평판을 가진 연출과 하면 옆에 딸린 나도 같이 한 세트로 능력있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어차피 동아리 공연 주제에 뭐 그렇게 급이니 평판을 따지나 하지만. 원래 그런 사소한 가십거리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조림 돌림 되는 거니까. 그건 싫었다.
세 번째, 도망칠 곳이 필요했다. 그리고 당시 나는 휴학을 계획하고 있었다. 특별히 뭔가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고 그냥 쉬고 싶어서. 지금 생각하면 정말 안일하게 살고 있었구나 싶지만 그땐 그랬다. 쉬어가고 싶다는 게 이유이긴 했지만 결국 계획 없는 휴학이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는 것이 걱정이 되기도 했다. 연주회를 준비하게 된다면 휴학 중에 뭔가를 하고 있다는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말로 나 자신 조차 속일 수 있는 그런 합리적인 핑계가 필요했다.
이런 이유들로 이 연주회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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