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때였다. 당시 천안은 비평준화 지역이었고, 고입이 끝나면 중3 교실은 수능끝난 고3 교실과 분위기가 비슷했다. 어차피 공부를 더 하는 게 의미가 없고, 학생들은 통제가 안되고, 나도 너무 심심했다. 그래서 책상에 껌종이를 붙이기 시작했다. 요즘 친구들(?)도 책상에 껌종이 붙이기를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껌 은박지를 책상에 대고 손톱이나 다른 물건으로 비비면 은박 부분만 책상에 붙고 비닐은 벗겨진다. 학교에 껌을 사오면 다들 한두번 쯤은 해보는, 그런 별거 아닌 작업이었다. 나 역시 처음에는 그냥 책상 구석에 몇 군데에만 하고 말려고 했다. 그런데 하다보니 뭔가 끝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수업시간에 선생님들은 그냥 킬링타임용 영화만 틀어주고 우리가 뭘 해도 신경을 안 쓰셨으니까 나는 계속 껌을 씹기로 했다. 처음에는 나 혼자 껌을 사와서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우리 반의 과업(?)과 같은 것이 되어서 다 같이 껌을 씹고 껌종이를 붙이고 있었다. 심지어는 반 친구들이 나 때문에 껌종이를 모아다가 가져다 주기도 했다. 동전 같은 거로 한 번 긁어보고 싶을 만도 한데 다 같이 이 책상을 지켜줬다. 순수한 충청도 친구들...🤣🤣 책상을 마치고 나니 의자도 하고 싶었다. 책상에 붙일 때에는 의자에 앉아서 하면 되기 때문에 껌종이를 붙이는 작업이 그다지 어색하게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내 자리는 맨뒤였기 때문에 그냥 고개 숙이고 뭔가 이상한 것을 하는 정도로만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의자를 시작하면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작업을 해야했기 때문에 선생님들도 알아차리게 됐다. 애초에 창가 자리라 책상이 빛나기도 했었고. 그래도 운이 좋았다. 정말 엄격한 선생님들이셨다면 학교 물건에 무슨 짓이냐며 바로 교무실행이었을 텐데 그런 선생님들은 없었다. 심지어 미술 선생님은 이 작업을 예술로 인정해주고 격려해주셨다. 현대미술이 이런식이려나. 저 사진에는 안보이지만 책상 주변으로 꽤 많은 우리반 친구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모든 작업을 마치고 다함께 감상하며 촬영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꽤 여러 각도에서 여러 장을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10년 지난 지금 남은 사진은 저 한 장 뿐이다. 그래도 남은 게 어디인지. 졸업 전까지는 저 책걸상을 내가 계속 사용해야했기 때문에 껌종이가 벗겨지는 것을 막기 위해 테이프로 코팅까지 했다. 저 짓을 도대체 왜 했냐고 한다면 글쎄, 그냥. 하고 싶어서. 저게 재밌었으니까. 의미 있고 없고는 내가 결정한다. 나한테 있어서 저 껌종이 작업은 할 일이 없는 학교에 등교하는 것보다 더 가치있는 일이었다. 껌종이 붙일 시간에 수학 문제를 더 풀었다고 해서 몇 년 뒤 수포자가 안 되었을리도 없다. 다만 저 책상은 나의 것이 아니고 공공재이기 때문에 학교를 떠나기 전에 원상복구를 시켰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졸업했다는 점은 혼나야 한다. 그 때는 어려서 거기까지 생각을 못했는데, 껌종이를 떼는 게 아까웠으면 학교에 새 책상을 사주고 가던가 아무튼 해결까지 했어야 했다. 뭐가 어찌됐건 그건 내 잘못이 맞다. 새 학기에 저 책상을 처리해야했던 분들께는 늦었지만 죄송하다는 말씀 꼭 전하고 싶습니다...ㅠ 악의는 없었어요. 이 글은 다른 분들의 블로그를 읽다가 쓰게 된 글이다. 그 분은 독실한 크리스찬인지라 동기부여가 하나님을 통해 이뤄지는 분 같았다. 그게 뭐 어떻다는 게 아니고. 그 블로그를 보다가 나는 어떤 식으로 동기부여를 하는 사람인가 생각하게 돼서. 마침 저 유물 사진을 찾아내기도 했고. 나는 내가 재미 있어야 움직이는 사람인 거 같다. 뭔가 애매할 때, 나는 스스로한테 이게 하고 싶냐고 물어본다. 어차피 내가 나한테 묻는 건데 나를 설득하고 속이기 위해 주절주절 합리화를 위한 대답 같은 건 할 필요가 없지. 그래서 '그렇다/아니다' 딱 2가지 선택지만 놓고 결정하게(?) 시킨다. 내가 딱히 내 말을 잘 들어줄 필요는 없는데 그래도 시키는 대로 다 해주는 편인 듯. 대충 그렇게 하면 어느 정도 정리가 될 때도 있다. 하고 싶고 재밌는 것만 하면서 살 수는 없지만 이렇게 사는 사람도 필요하지 않을까? 아닌가ㅎㅎㅎ 도대체 아침부터 책상 사진 올려놓고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10년전 나는 저런 걸 하고 있었고 꽤 뿌듯해 했다고. 그래도 저때로 돌아가라면 안 돌아가지! 앞으로의 내가 더 재미있을 거 같아서. 그리고 수능 다시 보기 싫어서...!8ㅁ8